[내 집 마련 분투기 1화] 4년간의 방황, 청약에서 구축 매매로 돌아오기까지

반응형

내 집 마련 여정에서 얻은 3가지 교훈 (Lesson Learned)

하나의 계획에 올인하지 마세요. 시장은 언제든 변할 수 있습니다. 항상 플랜 B를 염두에 두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진짜 공부는 책상 앞이 아닌 길 위에 있습니다. 유튜브와 책만으로는 알 수 없는 동네의 진짜 모습(상가 업종, 분위기, 활기)은 직접 발로 걸으며 '임장'할 때 비로소 보입니다. 막연한 정보가 살아있는 지식으로 바뀌는 과정입니다.
'보는 눈'을 높인 뒤, 현실과 타협하는 기준을 만드세요. 좋은 동네를 보며 안목을 키우고, 어려운 환경을 겪으며 포기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을 정해야 합니다. 이상과 현실을 조율하는 자신만의 기준점이 후회 없는 선택을 만듭니다.

 

 

어느 날 문득, 결심했다. "내 집을 사야겠다."

이 한 문장으로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지만, 그건 거대한 착각이었다. 망망대해에 떨어진 기분.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몰라 정처 없이 인터넷을 떠돌았다.

꿈의 시작, '청약'과 4년간의 기다림

 

그러다 '부의 사다리'라는 블로거를 알게 되었고, 한 줄기 빛을 만난 것처럼 그분이 운영하는 단톡방에도 들어갔다. 당시 부동산 시장의 대세는 단연 '청약'이었다. 나 역시 '청약 당첨'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부동산 공부에 첫발을 떼었다.

 

당시 광명시는 '분양가 상한제' 지역으로,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나는 청약 1순위의 '2년 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 망설임 없이 광명으로 이사했다.

 

그렇게 2년. 드디어 청약을 넣을 수 있는 자격이 되었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광명시가 더 이상 분양가 상한제 대상이 아니게 된 것이다. 때를 기다리면 괜찮아질 거라 믿었지만, 이미 날아오르기 시작한 분양가는 내려올 생각을 않았다. 희망고문 같은 2년이 또 흘렀다. 광명에서만 4년, 나의 첫 번째 꿈은 그렇게 멀어져 갔다.

 

방황의 시작, 닥치는 대로 부딪히기

청약을 포기하고 '구축 아파트 매매'로 방향을 틀자, 나는 조급해졌다. 유튜브와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주말마다 정처 없이 임장을 다녔다.

 

아직 공부가 충분하지 않았던 시기, 서울 은평구의 한 아파트가 마음에 들어 덜컥 계약을 시도한 적도 있다. 당시엔 확신도, 지식도 부족했던 터라 무리하게 금액을 깎아달라 고집하다 결국 계약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때는 속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천만다행인 일이다. 그 경험 덕분에 나는 더 좋은 집을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렇게 1년 가까이,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어디가 나에게 맞는 곳인지도 모른 채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서울과 경기도를 떠돌아다녔다.

 

진짜 공부의 시작, '월부'에서 눈을 뜨다

방황이 1년이 채 안 되었을 무렵, '월급쟁이 부자들(월부)'이라는 커뮤니티를 알게 되었다. 너나위 님의 책을 시작으로 관련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고, 몇 개의 온라인 강의도 들었다.

가장 큰 변화는 '체계적인 임장'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별 과제를 하며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배운 것을 토대로 지역을 분석하고 현장에 나갔다. 

 

강의에서 강사님들은 늘 "계속 걷다 보면 동네의 분위기가 바뀌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처음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정말 그랬다. 광명시 안에서도 어느 단지 상가에는 재가방문 요양센터가 두세 개씩 있었는데, 조금 더 걷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른 아파트 상가에는 태권도, 피아노 학원들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었다. 그 순간, 마치 신세계를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아이들의 활기가 넘치는 동네와 그렇지 않은 동네의 차이를 피부로 느낀 것이다.

 

'당장 살 수 없는 비싼 지역이라도 반드시 가봐야 눈이 트인다'는 말의 의미도 몸소 깨달았다. 목동이 그랬다. 똑같이 30~40년 된 낡은 아파트인데도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잘 관리된 아파트가 공원을 품은 듯한 구조를 보며 '요즘 아파트는 왜 이렇게 못 지을까' 감탄할 정도였다. 나의 기준점이 한 단계 높아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반대의 경험도 있었다. 평생을 경기권에서 살아온 내게 서울의 극악스러운 언덕과 빌라촌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지?' 싶었는데... 수많은 동네를 직접 걷다 보니 어느새 "이 정도 언덕은 평지나 다름없지!"라며 타협하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ㅎ) 그렇게 나의 눈은 이상을 높이는 동시에, 현실과 타협하는 법도 함께 배워가고 있었다.

 

그 후 6개월, 나는 거의 격주로 쉬지 않고 임장을 다녔다. 이 블로그레 기록으로 남긴 임장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임장도 있었다. 어떤 날은 혼자 깊은 생각에 잠겨 걸었고, 어떤 날은 엄마와 함께, 또 어떤 날은 내 반려견을 데리고 동네 구석구석을 누볐다. 힘들었지만, 하루하루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반응형
  • 네이버 블로그 공유
  • 네이버 밴드 공유
  • 페이스북 공유
  • 카카오스토리 공유